"여러분, 저는 구름 위를 걷고 살았습니다. 왜냐하면 별, 스타니깐. 좋을 것 같아 보여도 저도 사람이다 보니 별로 사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제 땅에서 걸으며 살려고 합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잘한 일이 마이크를 놓는다는 이 결심입니다."지난해 2월 은퇴를 선언한 후 가황 나훈아(77)가 `라스트 콘서트-고마웠습니다` 전국 투어를 약 1년 동안 열면서 털어놓은 멘트다. 나훈아는 지난 1월 10일~12일 서울 KSPO돔에서 펼친 `라스트 콘서트-고마웠습니다`를 마지막으로 59년 가수 인생의 피날레를 의미 있게 장식했다. 그는 지난해 4월 인천, 5월 청주·울산, 6월 창원·천안·원주, 7월 전주, 10월 강릉, 11월 안동·진주·광주, 12월 대구·부산에서 차례로 팬들에게 감사의 고별인사를 전하는 공연을 열었다.▶임영웅이 `영웅`으로 떠오른 시대에 가황 나훈아는 사라지는가? 부모와 배우자, 가족 등과 함께 보러 가고 싶은 가수 콘서트는 누구세요? 필자는 당연히 나훈아를 선택할 것이다. 그러나 대세로 자리잡은 임영웅의 선호도가 나훈아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1위 엘리베이터TV 운영사인 포커스미디어 코리아가 지난해 5월 8일 어버이날을 맞아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임영웅이 47%로 1위를, 나훈아가 20%로 2위를 각각 차지했다. 포커스미디어는 지난해 4월 한 달간 25~59세 2212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 방식으로 `부모님께 효도 선물로 드리고 싶은 가수 콘서트`를 조사했다. 임영웅(33)이 나훈아(77)보다 2배 이상 앞선 것은 20대~70대의 다양한 연령층을 팬으로 확보하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이에 대해 나훈아는 주로 50대~70대의 장년층 이상 연령층으로부터 인기가 집중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황(歌皇)` 나훈아는 임영웅과 비교하는 자체가 불쾌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임영웅은 콘서트 무대와 TV를 통해 시시때때로 접할 수 있으나 나훈아는 자신이 주도권을 쥐고 신비주의 전략을 펼치면서 장기간 모습을 보여주지 않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2006년 이후 11년 동안 논란과 의문 속에 칩거 생활을 해왔던 나훈아는 2017년 7월 새 앨범 `드림 어게인(Dream Again)`을 발표하고 컴백한 바 있다. 물론 나훈아는 방송에서 자신이 신비주의라는 게 가당치도 않다고 일축한 바 있다. 예술적 창작력이 고갈됐다고 느낀 결과 영감을 얻기 위해 11년간 자신만의 세계를 가지는 소중한 시간이었다는 것이다. 황제는 아무데나 나타나지 않는다. 가요계 황제 `가황` 나훈아도 잊을 만하면 가끔 공연을 통해서만 팬들을 만난다. 세월도 그를 비켜 가는 것 같고 무대 밖 사생활도 거의 노출되지 않아 궁금증을 자아내고 신비스럽다. 대중의 관심과 인기를 먹고 사는 스타에게 신비주의는 최고의 유혹 방법이다. 스타는 저 높은 하늘 어둠 속에 숨어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잠시 도피할 수 있는 꿈이어야 한다. 이러한 스타 나훈아가 무대에서는 팬들에게 자신의 영혼을 바쳐 열창하기에 관중도 열광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훈아는 `만인의 스타`인 동시에 `신화적 스타`인 것이다.나훈아는 2004년 칼럼을 통해 ‘트롯’이나 ‘뽕짝’ 대신 ‘아리랑’이라 부르자고 제의했다. 그는 2005년 MBC `나훈아의 아리수` 공연에서도 “우리의 전통가요를 트롯의 일본식 발음 `트로트`로 부르는 것은 말도 안 된다. 앞으로 ‘아리랑’이라고 부르자"고 제안한 바 있다.▶판사를 원한 아버지와 의절한 나훈아의 `테스형`은 아버지를 위해 부른 노래 나훈아(본명 최홍기)는 부산시 동구 초량동에서 선원이었던 부친 최영석 씨의 2남 2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가수가 되려고 결심했다.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로 당시 부모는 아들이 가수 되는 것을 반대했다. 아버지는 나훈아가 법조인이 되기를 바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훈아는 “가수가 되려는 꿈을 끝까지 말린다면 영도다리 밑에 풍덩 빠져 `풍덩대학`에 가버리겠다”며 어머니를 협박해 상경했다고 한다. 그때부터 집안에서 버린 자식 취급을 받은 것이다.서라벌예고에 진학한 나훈아는 지인 사무실 의자에서 새우잠을 자면서 힘든 무명가수의 길을 가기 시작했다. 오아시스 레코드 사무실에 사환으로 들어간 그는 마루를 닦고 작곡가들에게 세숫물까지 떠다 바치는 고단한 생활을 감내하면서 영양실조에 걸렸을 만큼 배고픈 시절에도 가수의 꿈을 포기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나훈아의 사촌동생인 가수 나진기는 2020년 10월 KBS1TV `아침마당`에 출연해 당시 인기를 끌었던 나훈아의 `테스형`을 언급했다. 나진기는 "(나훈아) 형님이 큰아버님 산소에 가서 테스형을 만들었다"며 "노래에서 테스형을 부르지만, 사실은 아버지를 부르는 것"이라고 했다. 테스형 2절에 `소크라테스형`이 나오는데 테스형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를 지칭하지만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 등의 가사는 나훈아가 아버지를 생각하며 쓴 것이라는 설명이다. 아버지가 살아 계셨다면 법조인이 아니라 전무후무한 가황으로 자리매김한 아들을 어떻게 생각할까?▶색즉시공(色卽是空)···"잠시 왔다 가는 인생, 모두 부질없다는 것"나훈아는 2024년 초 은퇴를 시사한 후 소속사를 통해 "마이크를 내려놓는다는 것이 이렇게 용기가 필요할 줄은 미처 생각지 못했다. 박수칠 때 떠나라는 쉽고 간단한 말의 깊은 진리의 뜻을 저는 따르고자 한다"라고 밝혀 화제를 모았다. `가황(歌皇)` 나훈아의 `라스트 콘서트-고마웠습니다` 전국 투어에서는 암표가 여전히 기승을 부렸다. 공연법은 매크로 프로그램을 사용해 공연 입장권과 관람권을 구입한 후 더 비싼 가격에 재판매하는 부정 판매 행위를 금지한다. 위반 시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그런데도 암표를 비싸게 팔 수 있는 것은 나훈아의 `LAST CONCERT`를 꼭 한 번 보고 싶어 하는 팬이 장사진을 이뤘기 때문이다. 대구 수성구에 사는 박모 주부는 "웃돈을 주고 티켓을 구입해 남편과 함께 나훈아의 마지막 대구공연을 관람했는데 일생에 단 한 번 보는 공연이라 너무나 감동적인 무대였다"고 극찬했다. 나훈아는 지난해 12월 7일 대구 코엑스 동관에서 전국 투어 `2024 고마웠습니다 라스트 콘서트`를 열었다. 그는 이 무대에서 "국회의사당이 어디고? 용산이 어느 쪽이고? 여당, 여당 대표 집은 어디고?"라며 부채를 들며 "이 부채 끝에 (기운을) 모아서 부른다"면서 `공(空)` 후렴부를 열창했다. `공(空)`은 `색즉시공(色卽是空)`의 준말로 보인다. 색즉시공은 현실의 물질적 존재는 모두 인연에 따라 만들어진 것으로서 변하지 않는 고유의 존재성이 없음을 이르는 말이다.나훈아 작사·작곡 `공(空)`은 "잠시 왔다 가는 인생/ 잠시 머물다 갈 세상/ 백년도 힘든 것을/ 천년을 살 것처럼/ 살다 보면 알게 돼/ 버린다는 의미를/ 내가 가진 것들이/ 모두 부질없다는 것을"이라는 가사로 그가 무대를 떠나도 감동과 울림의 여음으로 오래도록 국민의 가슴에 남을 것이다.
이성원 대표기자 newsir@naver.com